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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매일] 스마트폰과 한 장의 엽서

작성자 :
POSMIT
작성일 :
2023-01-12 14:21
조회 :
395

서의호 칼럼 - 스마트폰과 한 장의 엽서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84388

   

▲ 서의호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스마트폰,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대표되는 즉석 메시지를 통한 사회넷트웍 서비스(SNS)는 현대 사회에 큰 편리함을 가져다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폰으로 메시지, 사진을 즉석에서 주고받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대화를 할 수도 있고 감정을 교환하기도 한다. 편지나 엽서를 이멜로 대신하면 즉석에서 세계 어디든 소식을 전할수 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30여년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하던 정보통신의 혁명을 우린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친구를 스마트폰으로 괴롭혀서 자살에 이르도록 만들기도 하고 각종 금융사기도 일어난다. SNS에서 상대방을 모독하거나 허위소문을 퍼뜨려 자살한 연예인들도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아니면 말고`식의 순화되지 않은 언어의 남용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네티즌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학생들은 인터넷북을 좋아하고 종이책을 사지 않는다. 얼마전 한 대학교수가 종이책을 사도록 강요한다고 하여 학생들이 항의를 하는 소동도 있었는데 필자는 그 교수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즉석의 연락이 가능하고 정보를 즉석에서 볼수 있기에 오히려 인간의 감정은 점점 매말라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필자가 대학 다니던 시절은 엽서와 편지가 연락수단이었다. 대학 다니던 시절 학교가 멀어서 기숙사에 기거 하던 시절, 기숙사는 한 건물에 100명이 넘는 학생이 기거하는데, 전화는 경비실에 한대였다. 외부에서 경비실에 전화를 걸려면 우선 엽서를 보내서 안부를 묻고, 전화거는 시간을 알려줘야 경비실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전화를 받곤 했다. 외부에서 오는 엽서는 기다란 탁자위에 깔아놓으면 자기 이름을 보고 각자 들고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친구에게 온 연인의 엽서가 눈에 띄었다. 거기에는 곱게 쓰여진 사연이 있었다. 

“친구들하고 산에 왔다가 적었습니다. 마을까지 1시간을 걸어 내려와 이 엽서를 우체통에 넣고 다시 올라갑니다. 내려오는 길에 비가 와서 엽서가 젖을까봐 가슴에 안고 걸어 왔습니다” 이 한 장의 엽서에 담은 사랑의 마음을 필자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SNS로서는 감당할수 없는 인간적인 순수한 감정일꺼라는 생각이 든다.

90년대만 해도 제자들, 친구들에게서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이 꽤 많이 왔다. 어떤해는 100통 가까이 받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카드나 연하장이 이멜로 대신되고 있다.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도 마찬가지이다. 정성을 담아내기엔 SNS가 갖는 한계가 느껴진다. `편리`와 `감정`을 맞 바꾸었다면 필자의 논리의 비약이 너무 큰 것 일까?

얼마전 미국에서 귀국할 때 가져왔던 CD 플레이어, 스피커 등 오디오를 손질했다. 손질을 도와준 기술자 이야기로는 MP3에서 다시 CD나 LP판으로 가는 복고풍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며 턴테이블을 하나 구입하라고 한다. 

뜻밖의 소식이었다. 턴테이블은 요즘 젊은사람들은 구경도 못한 것이겠지만 기성세대에겐 낭만의 상징이다. 얼마전 서울 대학로의 학림다방이라는 곳을 가보았다. 50년 역사의 학림다방은 옛 서울 문리대 자리 앞에서 대학생들의 사랑과 낭만을 함께 하면서 LP판을 턴테이블에서 틀어주던 곳이었다. 그곳은 간판이나 실내구조를 하나도 바꾸지 않고 영업을 하고 있었고 그시절의 낭만의 냄새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 

SNS가 삶을 엄청나게 편리하게 만들었다는데 이의가 있을수 없다. 사람간의 연락은 물론, 뉴스의 확산도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세계 누구와도 실시간의 대화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 같지는 않다. 즉각적인 연락이나 뉴스의 확산보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진정 남을 사랑하는 마음과 감정을 정성껏 표시하는 문화일 것이다.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언어의 순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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